마주 앉기 전에 이미 끝나 있는 것들
같은 브랜드였다. 두 시장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가격 문제가 터졌다.
한쪽은 우리가 올려달라고 했고 거래가 끝났다. 다른 쪽은 상대가 깎아달라고 했고, 우리가 거절했는데도 지금까지 잘 돌아간다.
협상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이 차이와 별 상관이 없었다. 결과는 앉기 전에 거의 정해져 있었다. 양쪽 다 입에 올리지 않던 것 하나 때문이다. 가격 아래에 깔린 손익 구조.
1. 마주 앉기 전에 끝나 있다
첫 번째 시장은 우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래 적자였다. 안에서 시나리오를 몇 개 만들고, 값을 올려달라고 공식 제안했다.
몇 퍼센트를 놓고 실랑이할 줄 알았다. 상대는 통째로 거절했다. 계약은 살아 있는데 다음 수가 없었다.
풀린 건 전체 회의 전날 저녁이었다. 자료도 없이 그쪽 대표와 둘이 앉았다. 우리 숫자를 먼저 꺼냈다. 그가 한참 말이 없다가, 자기들도 이 브랜드에서 돈을 잃고 있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계속해봐야 둘 다 손해면, 끝내는 쪽이 둘 다에게 낫다. 협상을 아무리 잘해도 이 계산은 안 바뀐다. 인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줄어들 뿐이다.
협상 이론에는 이걸 가리키는 말이 있다. 합의가 깨졌을 때 나에게 남는 최선의 길 — 영어로는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라고 한다.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가 『Getting to Yes』(1981)에서 정리한 개념인데 실무에서는 자주 잊힌다. 요지는 하나다. 협상력은 말솜씨가 아니라 "안 해도 괜찮은 정도"에서 나온다.
그래서 가격 대화의 결과는 대체로 이 네 칸 중 어디에 앉아 있느냐로 정해진다.
2. 물어야 할 것은 하나다
두 경우를 가르는 질문은 딱 하나고, 반나절이면 답이 나온다.
우리 이익은 올라가나 내려가나?
당연히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공급가가 원가를 겨우 덮는 구조라면 많이 팔수록 손실이 커진다. 물류비, 행사 비용 분담, 반품 처리가 전부 물량을 따라 같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관리회계에서 물량이 늘 때 이익이 움직이는 폭을 영업 레버리지(operating leverage)라고 부른다.
위쪽 선이면 협상할 것이 있다. 물량, 기간, 채널 범위가 전부 카드가 된다. 아래쪽 선이면 협상할 게 없다. 남는 건 결정 하나다. 구조를 다시 짤 수 있는가, 그리고 상대가 같이 해줄 것인가.
3. "일단 들어가자"의 청구서는 다른 사람이 받는다
적자 시장의 조건은 내가 맡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왜 이렇게 됐냐고 물었더니 답은 간단했다. 들어갈 때 급한 게 이익이 아니라 속도였다는 것.
흔한 거래다. 늘 틀린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쁜 조건은 종이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계약으로 굳고, 그 조건이 유지된다는 전제 위에 쌓인 매장 투자로 다시 굳는다.
그 시장의 투자는 오프라인에 몰려 있었다. 매대 연출, 집기, 진열. 넓히는 데 돈이 많이 들고 멈추면 가치가 거의 없다.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없다.
행동경제학에는 이걸 가리키는 말이 있다. 이미 써버린 돈이 앞으로의 판단을 붙잡는 현상 — 매몰비용 덫(sunk cost fallacy)이다. 아크스와 블루머가 1985년에 실험으로 정리했다. 유통 계약에서 이게 특히 고약한 이유가 하나 있다.
그래서 빨리 들어가려고 불리한 조건을 받는 쪽에 서 있다면, 정직한 질문은 "이 거래가 오늘 기준으로 남는 장사인가"가 아니다. 후임 중 누가 이걸 갚게 되는가, 그때 그 사람에게 뭐가 남아 있는가이다.
4. 거절해야 할 때, 세 번째 길
흑자 시장에서 상대는 여러 번 깎아달라고 했다. 우리 이익에 여유가 거의 없어서 그냥 깎아주는 건 선택지가 아니었다.
깎아주면 이익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기준점이 옮겨진다. 심리학에서 처음 본 숫자가 이후 판단의 기준이 되는 현상을 닻 내리기(앵커링, anchoring)라고 한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1974년 『Science』에 보고한 것이다. 한 번 내린 가격은 다음 대화의 출발점이 되고, 그래서 다음 요구는 더 빨리 오고 더 낮은 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최소 주문 수량을 채우는 조건으로 특별가를 제시했다. 상대가 받았고, 그 사업은 지금도 돌아간다.
여기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정확히 보자. 우리는 가격을 바꿨다. 다만 무언가와 맞바꿔서 바꿨다. 원칙은 "절대 깎아주지 않는다"가 아니다. 계약 기간 중 정가는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조건이 붙은 가격을 몇 개 만드는 것이다.
이 구분이 그냥 깎아주는 것 대신 해주는 일이 셋이다. 앞으로의 모든 대화에서 기준이 될 정가를 지킨다. 양보를 그 양보를 메울 물량에 묶는다. 그리고 상대가 무언가를 얻고 자리를 뜨게 한다. 이게 앞으로 2년의 관계에는 몇 퍼센트보다 크게 작용한다.
5. "좋아지고 있었는데"가 가장 비싼 말이다
여기서부터는 반론이 있을 거라고 본다.
적자 시장이 끝날 무렵, 나는 이미 그 사업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수익성은 나아지고 있었다. 연말까지 그 전환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나아지는 숫자를 들고 있으면 "조금만 더"가 늘 합리적으로 들린다.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밝힌 대목이다. 사람은 같은 크기라도 얻는 기쁨보다 잃는 아픔을 더 크게 느낀다 —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부른다. 두 사람의 1992년 후속 연구는 그 배율을 약 2.25배로 추정했다. 그래서 손해 구간에 들어가면, 손해를 확정 짓지 않으려고 오히려 더 위험한 쪽을 고른다. 이 전체 설명을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이라고 한다.
방법은 하나다. 숫자를 미리 박아두는 것. 몇 개월 안에 어느 수준에 닿지 못하면 "나아지는 중"을 근거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먼저 정해둔다. 기준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결과를 보고 기준을 만들게 된다.
정리
직접 확인해 볼 것
이 글에 쓴 개념의 출처
- 배트나(BATNA) — Roger Fisher & William Ury, Getting to Yes: Negotiating Agreement Without Giving In, Houghton Mifflin, 1981.
- 닻 내리기(anchoring) — Amos Tversky & Daniel Kahneman,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Science 185(4157), 1974.
- 전망 이론 · 손실 회피 — Daniel Kahneman & Amos Tversky, "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er Risk", Econometrica 47(2), 1979. 손실 회피 배율 약 2.25는 Tversky & Kahneman, "Advances in Prospect Theory", Journal of Risk and Uncertainty 5, 1992.
- 매몰비용 덫(sunk cost fallacy) — Hal R. Arkes & Catherine Blumer, "The Psychology of Sunk Cost",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35(1), 1985.
- 영업 레버리지(operating leverage) — 관리회계의 표준 개념. 특정 저자에게 귀속되지 않음.
이 글의 사례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국가·회사·브랜드·개인·자사 수치를 모두 빼고 구조만 남긴 것입니다.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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